서브이미지

발간도서 목록

Home > 발간도서 > 발간도서 목록

우리 역사문화의 갈래를 찾아서 5 - 태백문화권 날짜 : 2019.01.23 15:56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58

국민대 안동문화권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책소개

“강호(江湖)에 병(病)이 깊어 죽림(竹林)에누웠더니, 관동(關東) 팔백리 (八百里)에 방면 (方面)을 맡기시니, 어와 성은(聖恩)이야가디록망극(罔極)하다. 연추문(延秋門) 드리다라 경회(慶會) 남문(南門) 바라보며, 하직(下直)고 물러나니 옥절(玉節)이 앞에 섰다. 평구역(平丘驛) 말을 갈아 흑수(黑水)로 돌아드니, 셤강(蟾江)은 어뒤메오, 치악(稚岳)이여기로다.”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은 45세 때인 선조 13년(1580)에 강원도 관찰사(관선 도시사)를 제수 받고 현지로 부임하는 과정을 이처럼 낭만적으로 노래했다. 치악산이 있는 원주를 지난 송강은 곧장 북상해 철원을 거치면서 궁예를 노래한 뒤 동북쪽으로 발길을 돌려 동해가 통천에 다다라 그곳 송어장과 금란굴을 돌아보고는 곧장 해변을 따라 삼척 월송정까지 남하했다. 그사이 송강은 고성 삼일포와 간성 선음당.영랑호, 양양 낙산사, 강릉 임영.경포대, 삼척 죽서루, 울진 망양정을 차례로 찾았다. 그가 따라간 길을 한반도 지도에 표시하면 남북으로 가로지른 태백산맥을 가운데에 두고 관서 지방을 따라 북상했다가, 그것을 넘어 북쪽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태백산맥을 끼고 남하했음이 드러난다.

송강이 밟은 길은 사실 그보다 250년 전인 고려 충숙왕 17년(1330), 근재(謹齋) 안축(安軸)이 밟은 여정과 거의 겹치고 있다. 다른점이 있다면 안축은 당시 고려 서울인 개경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이들의 유람 일정은 실은 기원전 220년 무렵, 황하 중상류 함양이란 곳에 도읍하고 있던 진시황제가 동쪽으로순행한 길과 방향이 놀랍도록 일치한다. 시황제는 함양을 출발해 동북쪽으로 가서 발해안 북쪽 연안 갈석산이란 곳을 출발점으로 삼아 중국의 동해(황해) 해변을 따라 장강(長江) 하류 유역 회계산 이란곳에 이르러 귀경하는 코스를 밟았다. 시황제가 이런 동순(東巡. 동쪽으로의 순수)에서 신선(神僊)을 만나 불사약을 얻고자 열망했듯이 안축이 나송강 또한 이르는곳마다 신선을노래했다.

그에 걸맞게 이들이 들른 곳에는 이미 신라시대 당시에도 신선들이 노니는 신선향(神仙鄕)이라고 간주되었다. 답사 과목을 전공필수로 개설한 국민대 국사학과가 기획하는 역사문화유적총서로 안동문화권.경주문화권, 지리산문화권, 금강문화권에 이어 5번째로 선보인‘태백문화권’(역사공간)은 대체로 강원도권역을 대상으로 삼고있다. 하나의 문화권역을 설정하기는 했으나 그 안에서 지역별 차이 또한 적지 않은 점을 감안해 태백문화권을 다시 ▲북한강 일대 ▲남한강 일대 ▲동해안 일대 등으로 세분했다.

 

저자 소개

 

감수 : 김두진, 정만조, 박종기, 지두환, 이범학, 조용욱, 장석흥, 문창로 (이상 국사학과 교수)

집필책임 : 장일규, 이근호, 여성구, 홍영의, 장석흥
사진 : 차진호
자료조사 · 정리 : 학부생 · 대학원생

 

 

목차

태백 문화권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산길과 물길로 어우러진, 사회경제적 기반

사방을 오고 간 태백의 선사인

삼국 통일의 토대를 이룬 남한강 유역

전통사상을 꽃피운 태백의 산하

이상향의 구현, 궁예의 태봉

은둔과 풍류가 공존한 태백

다양한 사림문화의 태백

위정척사운동의 본고장, 의병과 독립운동 태백

문화권의 역사문화적 특징

태백에 서린 선사 문화의 자취

태백의 선사 유적과 선사인 - 선사 문화와 태백의 선사 유적

산길과 물길을 넘나든 태백의 선사인

태백의 성황신과 강릉 단오제 - 태백을 지키는 성황신, 대관령 국사 성황사

강릉 단오제에 담긴 태백의 고유 신앙

삼국의 공방지, 태백의 물길과 산길중원을 둘러싼 삼국의 공방과 남한강 유역 -백제와 고구려의 중원 장악

신라의 고구려 세력 축출과 남한강 진출 신라의 북진과 동해안 일대 - 동해안 일대를 차지하려는 고구려와 신라의 각축

신라의 동해안 일대 지배 강화 한강으로 통한 태백의 물길과 산길 - 북한강과 동해안을 잇는 물길과 산길

남한강 일대의 장시와 동서 교류

고려와 조선시대에 정비된 태백산길과 물길 태백 불교의 변천과 그 자취

태백 불교의 성지, 오대산과 상원사 - 불보살이 머물고 있는 오대산

귀여운 스승, 문수동자와 상원사

보살주처신앙의 산실, 태백 문화권 문수보살을 찾아 다닌 자장 - 네 명의 성인이 머물렀다는 월정사

문수보살을 몰라본 자장과 정암사

의상계 화엄종의 성행 3대 관음성지, 낙산사 관음굴과 의상 - 바다의 구세주, 해수관음의 낙산사

파랑새로 변한 관음보살

백화도량을 꿈꾼 의상 법기보살의 성지, 금강산의 사찰들 - 법기도량 표훈사·정양사

발연사와 점찰법회 가지산문의 개산조 도의와 진전사 - 산라의 달마

동방의 보살 사굴산문의 개창, 범일과 굴산사 - 낙산사에 정취보살을 모신 범일

진귀조사설을 주장한 범일 태백의 지배 세력신라 왕실과 버금가는, 명주군왕 김주원 - 혜공왕의 죽음과 계속된 왕위 쟁탈전

진골귀족 출신 낙향 호족 김주원

김헌창의 반란과 명주 호족의 독자 지배 원주 호족 양길과 태백의 지방 세력 - 신라말 농민의 유망과 초적의 봉기

북원경을 장악한 양길과 궁예 미륵불의 화신, 태봉왕 궁예 - 왕실이 버린 왕자, 궁예|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염원, 태봉의 건국

전제 정치를 꿈꾸던 미륵불, 좌절과 몰락 고려 왕실과 태백의 사찰들 - 고려 초기의 불교계와 태백의 사찰들

원주 일대 사찰들, 흥법사·법천사·거돈사| 충주 일대의 사찰들, 정토사·숭선사

북한강 유역의 대표적 사찰, 청평사 태백의 풍류와 '관동별곡' - 태백 경관의 상징, 관동팔경

관동유람기 관동별곡의 종류 정철의 관동별곡 《제왕운기》를 낳은 천은사와 이승휴 - 두타산 고찰, 천은사와 이승휴

《제왕운기》에 나타난 이승휴의 현실인식 박달재와 거란 잔당의 침입 - 울고 넘는 천등산 박달재

거란 잔당의 침입과 박달재 전투 왕조의 끝과 새로운 시작의 터전 - 비운의 왕, 공양왕릉

조선 왕조의 시작, 준경묘와 이안사 태백의 다양한 사림 문화조선왕조실록과 오대산 사고 - 세계기록유산,《조선왕조실록》

실록의 편찬과 사고

오대산 사고의 설치와 운영 노산군묘에서 장릉으로

상왕복위운동과 단종의 폐위

단종의 복권과 장릉

임진왜란과 충주 탄금대 전투 - 전쟁 초기의 상황과 일본군의 북상

탄금대 전투의 전개 태백의 사림세력과 서원 - 중원 일대 서원과 사림세력

춘천·원주·강릉의 서원과 사림 강릉의 양반 주택, 선교장과 오죽헌 - 배다리골의 양반 주택, 선교장

오죽헌과 율곡 이이 화서학파와 위정척사 - 화서학파의 전개와 태백문화권

화서학파의 위정척사운동 근대 격동기의 은둔과 저항천주교 박해와 은둔, 황사영과 배론성지 - 천주교 전래와 박해

천주교인의 은둔과 배론성지

황사영 백서사건

배론성지의 유적 동학사상의 정비와《동경대전》간행 - 동학의 은둔과 태백

동학 조직과 사상의 정비

《동경대전》의 구성과 내용 태백의 동학 농민전쟁 - 두 갈래의 농민군

농민군 지도자, 차기석 전기의병의 상징, '호좌창의진'의 유인석 - 호좌 창의진의 결성

호좌 창의진의 전투와 서북행

호좌 창의진의 역사적 의미 관동 9군을 호령하던 '관동창의군'과 민용호 - 의병장 민용호| 관동창의군의 결성

원산진공전에서 북상까지 태백 전역을 물들인 후기의병의 자취 - 후기의병의 신호탄, 원주진위대

국민적 의병전쟁의 요새

13도 창의군의 발원, 관동창의대 태백의 3·1운동 - 태백 3·1운동의 원류

태백 3·1운동의 전파와 확산

태백 3·1운동의 특징 철원 애국단의 독립운동 - 대한 독립애국단의 별칭, 철원 애국단

철원 애국단의 설립| 철원 애국단의 지단, 강릉·평창·양양군단

연통제의 역할과 임시정부성립 축하시위 남궁억의 보리울 학교와 무궁화 운동 - 보리울 학교

나라의 표상, 무궁화 찾아보기